촉이 확신이 된 날 — 손절하며 살아온 이야기

촉이 확신이 된 날 — 손절하며 살아온 이야기

이 글은 아동 학대와 성폭력을 언급합니다. 구체적인 묘사는 없지만,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 글은 아동 학대와 성폭력을 언급합니다. 구체적인 묘사는 없지만, 미리 알려드립니다.

저는 평생 이렇게 손절하며 살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나르시시즘이나 사이코패스 성향이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손절하며 살아왔습니다. 다시 연락하지 않고, 다시 만나지 않고요. 그 때문에 손해도 많이 봤고, 여러 번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드라마스쿨을 갓 졸업하고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때, 영화 오디션 현장에서 연출 보조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배우들이 대본 없이 즉흥 연기로 오디션을 보는 자리였는데,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그날 주어진 즉흥 연기 상황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와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부모와 마주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디션을 보던 배우가,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 자기 이야기와 맞아떨어진 겁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의사도 그걸 눈치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여성의 과거를 하나씩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파헤쳤으면 다시 돌봐주거나 치료로 이어줘야 하는데, 돌아온 말은 그 내용을 대본으로 써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세계에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날 본 건, 사람의 가장 깊은 상처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소재 취급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원래는 그 사람을 보호해야 할 자리에 있던 사람이, 오히려 상처를 캐내는 데 가담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그 세계와 완전히 등을 돌렸습니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촉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자라고 있었습니다.

촉이 확신이 된 날

저는 열여섯에 소련을 거쳐 유럽 열네 개국을 도는 연수를 떠났습니다. 마지막 도시는 런던이었습니다. 그 4주간의 여행에서, 책으로만 보던 세계를 실제로 봤습니다. 그리고 확신했습니다. 여기가 제가 살 땅이라고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머니의 지지로 저는 호주로 떠났습니다. 시드니 공항에 내려서, 집을 구하고 가구를 사고 전기와 가스를 놓는 것까지 전부 혼자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촉으로 살았습니다. 느낌이 아니면 가지 않고,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 촉이 막연한 느낌에서 확신으로 바뀐 건, 훗날 런던의 드라마스쿨에서였습니다. 연기와 작품을 통해 저 자신을 들여다보게 됐고, 제가 수만 조각으로 흩어놓아서 저조차 볼 수 없게 숨겨놓았던 기억을, 조각조각 다시 찾아 맞추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원래 왼손잡이였다는 걸요. 왼손이 오른손만큼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옥스퍼드 스트리트의 벤치에 앉았던 어느 날이 기억납니다. 머릿속에 아무런 배경 소음이 없었습니다. 조용하고, 편안했습니다. 제 생애에서 가장 편안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생각을 제가 볼 수 있게 되니까,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말도 자연스럽게 분석이 됐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피해야 할 사람과 끊어야 할 사람이 구분됐습니다. 비즈니스에서는 일단 최선을 다해 맞춰줍니다. 하지만 처음 대화와 행동 몇 가지만 봐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손해를 보더라도 그 자리에서 빠집니다. 나중에 치를 시간과 감정의 손해, 그리고 결국 돈의 손해가 훨씬 크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이게 제가 좋은 영향력을 알아보는 눈이 왜 중요한지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금

남들 보기에 성공하지 못한 삶일지 모릅니다. 저는 남들의 생각을 보고 분석하는 경우는 많아도, 남들의 시선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항상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한가에만 집중하고 살았습니다.

행복합니다.

큰 집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쉴 때도 있고, 뼈저리게 어려울 때 같이 장난치며 파이팅하는 파트너도 있고 — 저는 이 파트너를 저의 또 다른 나라고 부릅니다 — 저한테 와준 두 딸도 있고, 저는 행복하니까 행복합니다.

손해도 많이 봤고, 여러 번 자리를 옮겨야 했고, 그래서 하지 못한 일도 많습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늦게 알아채고 남아있는 것보다, 일찍 알아채고 떠나는 게 언제나 더 쌌으니까요. 그만큼, 저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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