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버지가 됐다. 정확히 자기 아버지처럼 | 일론 머스크 심리분석 5부
그는 아버지가 됐다. 정확히 자기 아버지처럼.
한 번도 보호받지 못했던 아이가, 가족을 만들려고 할 때 벌어지는 일.
로켓은 성공했다. 회사는 커졌다. 돈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그리고 이제 가족을 들여다본다. 1편부터 4편까지 배운 모든 게 다른 방식으로 다시 보인다. 그가 세운 모든 회사를 관통했던 패턴이 — 그가 맺은 모든 관계도 똑같이 관통했다. 같은 운영체제. 같은 상처. 같은 결과.
그가 원했던 것 — 그리고 줄 수 없었던 것
그의 일부는 진심으로 건강한 가족을 원했다. 그 온기를. 곁에 있어주는 엄마, 안전한 집, 사랑받는 아이들 — 자신이 갖지 못했던 모든 것. 그는 그걸 만들려고 했다. 세 번의 결혼. 열네 명의 자녀. 계속 시도했다.
그런데 의식적인 바람 밑에서, 무의식의 운영체제는 항상 돌아가고 있었다.
안전하지 않은 집에서 만들어진 운영체제로는, 안전한 가정을 지을 수 없다.
아는 걸 반복한다. 그 아는 게 싫어도.
저스틴 — "난 당신 아내지, 직원이 아니야"
저스틴 윌슨은 퀸즈대학교에서 머스크를 만난 캐나다 소설가였다. 2000년 결혼했다. 결혼식 날, 피로연 댄스플로어 위에서,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 관계에서 내가 알파야."
그녀는 훗날 이걸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했다고 썼다.
첫 아이 네바다는 생후 10주에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스틴에 따르면, 머스크의 반응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머무르지 않기로 한 것. 일은 일어났고, 다음 일이 일어나야 했다. 이건 정확히 냉정함이라기보다는, 아픔을 멈춰서 처리하는 게 생존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사치라는 걸 아주 일찍 배운 사람에 가깝다.
이후 시험관 시술로 다섯 아이를 더 낳았다 — 쌍둥이, 그리고 세쌍둥이.
결혼 생활 내내, 저스틴이 "난 당신 아내지, 직원이 아니야"라고 말할 때마다, 머스크는 답했다. "당신이 내 직원이었으면 벌써 해고했을 거야."
그는 이걸 성과를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말로 했다. 그녀는 이걸 관계에 대한 그의 실제 프레임으로 들었다. 둘 다 맞았다.
부부 상담을 시작했다. 한 달, 세 번의 세션 뒤, 머스크는 최후통첩을 했다. "오늘 이 결혼을 고치든가, 내일 이혼 신청을 하겠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이혼 신청서를 냈다.
사랑이 식어서 관계를 끝낸 게 아니다. 그녀가 스펙대로 작동하지 않는 변수가 됐다고 판단해서 끝낸 것이다. 이건 남편의 논리가 아니다. 문자로 직원을 해고하고, 밤마다 엔지니어의 코드를 다시 쓰던, 그 운영체제가 작동한 것이다.
탈룰라 — 두 번 결혼한 여자
영국 배우 탈룰라 라일리를 저스틴과 이혼한 직후 만났다. 2010년 결혼. 2012년 이혼. 2013년 재혼. 2016년 다시 이혼.
같은 여자와 두 번. 두 번 다 같은 방식으로 끝났다.
놀랍게도, 탈룰라는 지금도 그에 대해 따뜻하게 이야기한다. "완벽한 전남편"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언젠가 세 번째 결혼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한 적도 있다.
왜 탈룰라는 그에 대해 좋게 말하는데, 저스틴은 그렇지 않을까?
내가 보기엔 — 그녀는 저스틴만큼 그가 진짜 파트너가 되어주길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관계의 정서적 깊이에 대한 기대치 자체가 낮았다. 그리고 관계를 맺는 능력이 진짜로 제한된 사람한테 기대치를 낮춰 놓으면, 그 결핍을 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머스크에게 가장 많이 다친 사람들은, 그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들이었다. 거리를 유지한 사람들은 더 잘 살아남았다. 이건 사업에서도 사실이고, 사랑에서도 사실이다. 그의 세계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규칙은 점점 더 온전히 그의 것이 된다.
패턴 — 에롤에서 일론으로
1편에서, 에롤 머스크가 아들 안에 무엇을 설치했는지 보여드렸다. 이제 그 설치가 일론이 맺은 모든 관계에서 어떻게 그대로 작동했는지 보자.
학대는 유전되지 않는다. 학습된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배웠다. 단어는 바뀌었다. 구조는 동일하다. 에롤은 아직 그 방 안에 있다. 에롤은 언제나 그 방 안에 있었다.
딸이 등을 돌린 날
2022년, 그의 자녀 중 한 명이 캘리포니아 법원에 개명 신청을 냈다. 청원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생물학적 아버지와 어떤 식으로도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2025년 한 인터뷰에서, 그 딸은 아버지를 "한심한 어른아이"라고 불렀다. 자신이 스스로 정체성을 밝혔을 때 아버지가 지지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목소리 톤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자동차 안에서 내내 소리 지르던 아버지를 묘사했다. 동생들 소식조차 뉴스 기사를 통해 세상과 동시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머스크의 반응은 — 한 팟캐스트에 나가, 자신의 "아들"이 어떤 이념 때문에 "죽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도 그 딸을 법적으로 버린 이름으로 부른다.
이건 이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아픈 장면이다. 딸이 한 말 때문이 아니다. 머스크가 하지 못한 것 때문이다.
딸은 세상에 아버지와 더는 아무 관계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반응은 그걸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 세상 탓으로, 이념 탓으로, 자기 자신만 빼고 누구의 탓으로든.
딸이 원했던 건 사과가 아니었다. 그냥 인정이었다. 그가 끝내 줄 수 없었던, 단 한 가지.
계속 채워지는 세계
세 번의 결혼 이후로도, 그는 계속 가족을 만들려고 했다. 열네 명의 자녀. 네 명의 여성. 계속 시도했다.
그는 가족을 원했다. 동시에 자기 통제 밖에 존재하는 파트너를 견디지 못했다. 열 살 때 백과사전과 SF 소설을 읽던 아이 — 바깥세상이 안전하지 않아서 책으로 내면의 세계를 지었던 그 아이 — 는,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그 내면의 세계를 현실 안에 계속 지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아내를 찾고 있는 게 아니다. 있어야 했는데 없었던 어머니를 찾고 있다. 한 번도 못 찾았다. 계속 찾는다. 그리고 그의 세계 안에서 진짜가 되려는 여자마다, 그 세계엔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걸 발견한다.
이 장에서 가장 가슴 아픈 건 이혼들이 아니다. 딸과의 일도 아니다.
그가 진심으로 이게 되길 원했다는 것이다. 매번. 결혼은 냉소적이지 않았다. 자녀는 자아의 부산물이 아니었다. 그는 온기를 원했다. 안전을 원했다. 자기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걸 원했다.
그냥 거기 도달할 수 없었을 뿐이다. 언어를 갖기도 전에 설치된 운영체제 — 여자는 못 믿는다, 사람은 서로를 실패하게 만든다, 알파가 되지 않으면 파괴된다는 그 운영체제가 계속 돌아갔다. 모든 결혼 밑에서. 모든 시도 밑에서.
로켓을 재설계할 수 있는 천재가, 자기 자신은 재설계하지 못한다. 이건 도덕적 실패가 아니다. 연극적 의미에서 정확한 비극이다 — 자신을 위대하게 만든 바로 그것에 의해 무너지는 인물.
솔직히, 머스크는 예외가 아니다. 사례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종류의 문제를 갖고 있다. 다른 건 딱 하나 — 자기 생각을 얼마나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행동에 조금씩, 조금씩 영향을 주느냐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뒤집어 훑어보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쉽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딘가에서 자기 자신을 한번 들여다봐 주면 좋겠다.
나는 어린 소녀였어야 했다. 힘들어도, 화가 나도 웃는 작은 소녀. 그래야 우리 가족이 행복하고 아무 문제 없다는 걸 사람들한테 항상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안의 나는 엄청나게 외로웠다. 엄마는 엄마대로 가족의 생존을 위해 일하셨고, 아빠는 아빠만의 시간을 보내셨다. 같이 있어도 각자 외로웠다. 겉으로는 행복한 가족인데, 뭔가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머스크처럼 도서관에 가서, 거기 있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곳이 나의 우주였다. 엄마 배 속에 있으면 이런 편안함일까 싶을 정도였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올 때, 나는 임신 3개월이었다. 아기가 배 속에서 아파서, 한국에도 영국에도 가지 못하고 결국 미국에서 낳아야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한동안, 이민 서류 문제로 마음을 졸였다.
그 시절, 남편 월급 하나로 렌트비 내는 것만도 빠듯했다. 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 베이비시터 비용이 내가 벌 수 있는 돈보다 더 나왔으니까. 그런데 사실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말도 못 하는 이 작은 아이를, 나는 남에게 맡길 수가 없었다. 그 우주의 외로움을,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딸을 안고 있으면, 가끔 그 눈 속에서 나 자신이 보였다. 말은 못 해도, 얼굴은 다 말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낯선 사람 품에서 짓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딸에게는 내가 직접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연기와 연출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사람의 감정과 심리를 읽는 훈련을 그대로 썼다. 아기의 눈높이에 맞춰서, 노는 형태로, 재미있는 감정으로, 매 순간 호기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래서 나는 하고 싶었던 연출 일을 잠시 접고, 7년을 큰아이와 함께 보냈다. 보스턴 칠드런스뮤지엄에서 사이언스뮤지엄으로, 심심하면 수족관에 가서 70년 된 커다란 거북이랑 익살스러운 물개들을 보며 두 살짜리 딸이랑 같이 웃었다. 칠드런스뮤지엄 안 미니 슈퍼마켓에서 장 보는 놀이를 하며 손님과 캐셔, 삶의 한 조각을 가르쳐줬다. 가끔 보스턴에 오는 오래된 범선들을 보러 가서 해적 놀이도 했다. 사이언스뮤지엄에서는 페달 돌리면 전기가 만들어진다고, 둘이 죽어라 자전거를 돌렸다. 내가 겪었던 외로움의 우주 대신, 딸의 하루는 현실의 재미로 꽉 채워주고 싶었다.
그 사이, 남편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만두 공장을 해보자고 했다. 있는 돈에, 부모님께 부탁해서 받은 도움까지 보태서 공장을 차렸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일찍 시작했다. ㅎㅎㅎ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렌트비 걱정이 다시 시작됐다.
사업이 힘들어지고 1달러도 없을 때, 렌트비를 내야 하는데 밤새 운 적도 있었다. 두려웠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 엄마는 이 피 말리는 상황을, 아이들과 함께 길거리에 나앉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그렇게 버텨내며 살았겠구나. 그저 살아남아서, 나를 지키고 내 동생을 지켜낸 것 — 그게 엄마의 사랑이었다.
남편은 미안했던 것 같다. 뭔가 해주고 싶은데, 돈은 빠듯했으니까. 집 근처에서 벼락 맞은 나무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그 나무 조각을 작게 깎아 십자가를 만들었다. 가죽끈에 꿰어서, 내 목에 걸어줬다. 우리 가족의 행운을, 아마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돈과 성공은 같은 선 위에 있을 때가 많다. 그런데 행복과 자유는, 돈이랑 꼭 같은 선 위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돈이 없어서 불편했던 순간에도, 돌아보면 행복했던 순간이 훨씬 많았다.
나의 행복도 중요하고, 남의 행복도 중요하니까. ㅎㅎㅎ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가 매일 하는 일
"하루 알약 20알. 새벽 3시의 X. 3,500만 달러 저택. 현재의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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