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지르는 사람과 조용해지는 사람 — 머스크에게서 배우는 관계의 기술
소리 지르는 사람과 조용해지는 사람
머스크에게서 배우는 관계의 기술
모든 사람들이 머스크가 가진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은 멍청하다, 남을 실패하게 만든다, 남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남자는 사납고, 믿을 수 없고, 강하다, 등등.
여자는 약하고, 믿을 수 없다, 등등.
이런 생각을 나도 가지고 있고, 너도 가지고 있어. 다른 게 있다면, 그게 얼마나 깊게 무의식에 박혀서, 보이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은 채로 행동으로 튀어나오는지 — 그게 사람마다 달라.
머스크처럼 돈과 힘이 있는 사람의 무의식은 혼자 있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또는 알아도 고치기 싫으면,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영향을 받게 돼. 피할 수도 없어. 개인이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만 힘들겠지만, 지인은 남이니까 거리를 두면 그만이잖아. 근데 이 사람이랑 매일 일해야 하는 사람은 도망을 못 가.
나의 교수님은 우선 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가 누구인지를 먼저 보라고 가르쳤어. 우리 수업 시간엔 비디오로 촬영하면서 서로의 연기나 작품을 봤어.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했는지, 작품을 나의 생각을 안 넣고 100프로 그대로 분석했는지. 우리는 항상 자기 생각을 보고 남의 생각을 보는 훈련을 했어.
여기서 나는 두 종류의 생각이 있다는 걸 배웠어.
끝내지 않은 생각은 보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은 생각이야. 끝낸 생각은 보고, 인정하고, 내보내는 생각이고.
이게 왜 중요하냐면 — 애기의 뇌는 소프트해. 이미 뇌에 톱니가 새겨진 엄마와 아빠 사이에 애기의 뇌가 놓이면, 엄마의 생각과 아빠의 생각이 그대로 새겨져. 그래서 애는 자라면서 엄마를 보고 "여자란?", 아빠를 보고 "남자란?", 가정을 보고 "사람이란?"을 배워. 삶이란, 할 수 없다, 하면 안 된다, 반드시 해야 한다, 원한다, 수치심 — 이런 개념들도 다 그때 새겨져.
학교에 가서 친구들, 선생님들을 보면서, 자기가 가진 생각이 진실이라고 믿고, 또는 진실이 되게끔 만드는 행동을 해. 평생 그걸 증명하면서 사는 거야. 이게 안 보이고, 안 끝나면 — 그게 '끝나지 않은 생각(unfinished thinking)'이야.
머리속에 끝내지 않은 생각이 많으면, 제대로 캐릭터의 생각을 넣을 공간이 없어. 나를 연기하게 되지, 캐릭터를 빼고. 그 공간을 비우는 게 훈련이었어. 나를 매일마다 생각의 줄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서 생각의 평정심과 올바른 생각을 하고 보기 위해, 그 줄 위에 서서 매일을 트레이닝하고 있어. 떨어질 때가 많아. 다시 생각을 재정비하고 다시 올라가지만.
연극 연출도 마찬가지야. 연출가의 인생이 너무 강하면, 그게 그대로 극 안에 들어가버려. 자기 얘기가 연기나 작품에 새어 나오는 거지.
연기와 연출은 무에서 유를 만들고, 그 유를 다시 무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잘 다듬어진 연기와 작품을 보면, 관객들은 자기의 인생, 자기의 생각을 그 안에 끼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해. 그럼 그게 관객과 감정으로 소통하게 되는 거야.
예를 들면, "사람은 못 믿는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들은 사람들을 못 믿어. 그들의 부모한테 새겨진 생각이고, 자라면서 여러 경험이 "역시 인간은 못 믿어"라며 그 생각을 계속 진실로 만들어줘.
근데 생각해보자. 세상에 못 믿을 사람 많은 것도 맞아. 근데 믿을 만한 사람도 있어. 이 생각이 너무 강한 사람은 진짜 믿을 만한 사람이 다가와도 못 알아보고, 되려 싸이코 게임을 하거나 그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어.
나도 "남자는 못 믿는다"는 생각이 강한 어린 여자였어. 우리 아빠는 바람도 피우고 거짓말도 좀 하는 사람이어서, 엄마가 우는 걸 여러 번 보고 살았거든. 남편을 21살에 영국에서 만나 동거부터 했는데, 드라마 스쿨에서 연기와 연출을 배우며 내 생각을 분석하기 시작했던 시기였어. 나는 그와의 동거, 특히 2년 동안 그를 끊임없이 시험했어. 정 떨어졌을 텐데도, 피곤했을 텐데도, 남편은 내가 나를 분석하는 그 시간 동안 그냥 옆에 있어줬어. 내 행동을 보면서 내가 뭘 원하는지 분석하며 꾸준히 곁에 있어준 거지.
남편을 보고 깨달았어. 아, 남자도 믿을 만하구나. 내가 가진 생각이 너무 강해서 구분을 못 하고 살았구나.
이걸 나는 '생각을 끝내는 것(finishing of thinking)'이라고 불러. 생각은 그냥 생각일 뿐인데, 이게 얼마나 사람들의 인생과 시간을 잡아먹는지 몰라.
내 안의 끝나지 않은 생각은, 상대방의 끝나지 않은 생각에 반응해.
심리학에서는 이걸 이미 오래전에 이름 붙였어.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끝나지 않은 과제(unfinished business)'라고 부르고, 정신분석에서는 한 사람의 처리 안 된 감정이 상대에게 던져지고 상대가 자기도 모르게 그걸 받아서 반응한다고 설명해. 내 안에 그 버튼이 없으면, 상대가 아무리 눌러도 안 눌려.
그래서 생각을 끝내는 작업은, 그 생각을 계속 보고 내보내는 작업이야. 이게 되어 있으면, 상대방의 끝나지 않은 생각이 느껴지거나 보여. 상대가 왜 저렇게 소리 지르는지, 뭘 무서워하는지, 뭘 증명하려는 건지 보이는 거야.
그럼 나는 냉정한 상태로 나를 놓을 수 있어. 상대의 끝나지 않은 생각에 반응 안 하게 되지. 반응하더라도, 곧 나를 다시 붙잡을 수 있고.
실제로 그랬다. 테슬라 시절, 그는 시급 직원부터 임원까지 가리지 않고 소리를 질러서, 경영진들 사이에서 "이번 주엔 누가 잡아먹힐까"라는 농담이 돌 정도였대. 한 번은 팀 전체한테 "너희 작업물은 완전 쓰레기다"라고 화상통화에서 퍼부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그만둔 직원도 있었고. 트위터를 인수한 뒤엔, 자신을 비판한 직원들을 새벽 4시 반에 해고 이메일로 정리했어. 어떤 직원은 회사 통보보다 머스크의 트윗을 통해 자기가 잘렸다는 걸 먼저 알았대.
이게 부끄러움 없는 힘의 사용이야.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최소한의 존중, 최소한의 정상적인 대화조차 안 거쳐도 된다고 믿는 사람.
근데 이런 그도, 스스로한테는 어떨까. 머스크는 이 모든 걸 알아. 돈이 힘이 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 결핍을 아주 잘 이용해먹었고, "나는 이런 시련도 이겨냈다"고 주장하지. 화성을 좇는 것도, 어쩌면 꿈을 좇는 바보들을 비웃으면서도 자기가 그 바보 중 하나라는 걸 아는 상태에서 계속 도는 거 아닐까.
화성은 언제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머스크 본인은 2029년을 얘기하지만, 실제 우주 전문가들 대부분은 그보다 훨씬 늦은 2030년대 중반, 그것도 "잠깐 발자국 남기는" 수준이라고 봐. 진짜 사람이 자급자족하며 사는 정착지는 2050년대 이후로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야.
깃발 꽂으면 자기 땅이 될까? 안 돼. 1967년에 이미 전 세계가 조약을 맺었어 — 어떤 나라도, 어떤 개인도 우주의 땅을 자기 것이라 주장할 수 없다고. 국가들이 개인한테 그걸 컨트롤하게 냅둘 리가 없지. 화성 개나줘라, 하고 싶어진다.
머스크는 이걸 모를 리 없어. 그런데도 화성을 향해 달려. 어쩌면 그가 쫓는 건 화성이 아니라, 화성을 쫓고 있는 동안에는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일지도 몰라.
지금의 머스크는 자기를 알고, "나하고 일하려면 내가 요청하는 걸 다 해라"는 태도를 100프로 잘 써먹고 있어. 근데 아쉬운 건 — 그와 일하는 을의 입장에 있는 우리가, 이 을의 자리를 잘 이용해야 하는데 그걸 못 해. 머스크 스타일은 눈에 잘 보여서 오히려 쉬워. 어떤 사람들은 속도 모르게,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정리하는 훨씬 무서운 타입도 많거든.
옛날의 나라면 "웃기시네" 하고 사표 던지고 잘 먹고 잘 살라고 했을 거야. 근데 지금은 사람들한테 말하고 싶어. 차가운 여우가 되자고.
내가 그런 사람한테 얻어야 할 게 있으면, 목적이 확실한지, 나의 절실함(특히 경제적인 문제)을 먼저 본다. 내면이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나의 냉정, 나의 내면 템포를 그 사람과 다르게 만들어서 계산해.
그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는 목적은 두 가지야. 하나는 너한테서 뭔가 얻어야 한다는 신호. 하나는 네 멘탈을 무너뜨려서 너 스스로를 못 믿게 만들려는 거.
어떤 윽박과 소리는 그냥 지나가는 쓰레기야. 무시하면 그만이야.
근데 돈과 힘이 있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쓰레기처럼 무시하기가 힘들어.
머스크는 이걸 뭐든지 잘 이용해먹고 있어.
어이가 없으면서도, 존경스럽기까지 해.
나는 한국 슈퍼 안 푸드코트에서 캐셔로 일해. 손님이 매상이라는 거, 나도 알고 손님도 알아.
미국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이 삶의 기본값인 곳이야. 근데 어떤 손님들은 몸은 여기 살아도, 정신은 아직 자기가 살던 곳의 시간에 멈춰 있어. 새로운 곳의 매너와 기준을 새로 안 배우고, 예전에 살던 방식 그대로 가지고 와. 그러다 자기가 매상이라는 걸 아는 순간, 그 힘으로 매너의 기준선 자체를 자기 편한 대로 밀어붙여. 화내고, 불평해. 을인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해. 그리고 그들도 그걸 알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는 걸.
며칠 전 일이었다.
내가 일하는 부스는 문 닫기 7분 전, 정신없이 바쁠 때였다. 손님한테 거스름돈을 건네는데 동전이 테이블에 부딪히며 소리가 났다. 그녀는 내가 무례하게 던졌다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서로 맞다 아니다로 다투다가, 그녀가 소리쳤다. 내가 블랙이라서 이렇게 무례한 거라고.
나도 그녀한테 말했다. 나도 컬러 있어.
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제 이해가 됐다.
그녀는 환불을 요구했고, 나는 돌려줬다. 그녀는 갔다가 다시 와서 나와 부스를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나도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면 고소하겠다고. 나도 같이 찍었다.
내 부스는 문을 닫았지만, 한국 슈퍼 안 푸드코트는 슈퍼가 닫을 때까지 열려 있다. 그녀는 넓은 자리에 앉아 아직 음식을 먹고 있었다.
처음부터, 손님이 나한테 무례하다고 불평했던 그 시점에서, 나는 상대가 원하는 대로 무례하게 굴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는 자기 안에 "사람은 무례하다", "사람들은 짜증나고 화나게 하는 존재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나는 거기에 그대로 반응했다. 소리를 지르고 맞받아침으로써, 그녀가 이미 갖고 있던 그 생각을 내가 직접 증명해준 거다.
나는 매일 최선을 다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와 상대의 생각을 파악하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는 게임을 안 하려고 애쓴다.
이번에도 한순간에 깨졌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줌으로써 내 평정심을 바닥으로 내리쳤고, 화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잔인하고 무례하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근데 그 순간, 그 줄 위의 알람이 울렸다. 이건 너만 손해 보는 거야.
그래서 그녀가 있는 자리로 갔다. 오해를 풀자고 했다. 내가 사과해야 할 것부터 먼저 사과했다. 그리고 사과를 받았다. 이름도 교환했다. 나는 영, 그녀는 지나였다. 그녀는 역시 괜찮은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괜찮은 사람도 많다.
지금은 우리는 서로를 더 배려하면서 매너를 지키는 손님과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서로 안부 인사도 하고, 아이들 잘 있는지도 물어보고 하는, 그런 정상적으로 서로 지키는 사이.
이게 차가운 여우가 되는 법이다. 소리 지르지 않는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참는 것도 아니다. 반응해버린 후에도, 나를 다시 붙잡을 수 있는 것.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나는 가면을 써. 누가 소리 질러도 금이 안 나는 가면.
상대의 템포에 휩쓸리지 말고 너만의 템포로 냉정하게 분석해서, 웬만한 건 다 들어줘. 죽어라 다 들어주는 것도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이야. 간지러운 데를 정확하게 찾아 긁어주는 것도 좋은 대처야.
가면 뒤에서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가면 앞에서 나는 다 들어준다.
이 둘을 동시에 하는 것 — 이게 을이 갑을 상대하는 진짜 기술이다. 그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는 순간, 사실은 그 사람이 너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야. 그걸 알면, 가면 뒤에서 너는 이미 우위에 있어.
그럼 너는 차갑게, 계산된 목적으로 이렇게 말해봐.
"내가 실패하는 걸 보고 싶어서 나를 이렇게 몰아붙이는 거, 그게 결국 당신도 실패하게 만든다는 거 안 보여?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야."
절대로 그의 빠른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말고, 그걸 타. 타는 방법은 — 첫째, 너의 감정을 최대한 안정시키고, 둘째,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를 보려고 집중하는 거야. 냉정하게 집중하면 본능적으로라도 느끼거나 보여.
그리고 핵심을 얘기해.
"당신은 지금 나를 실패시키려다가, 결국 당신 자신도 실패하게 만들고 있어. 시간이 필요해."
당당하고 너 자신을 믿어라. 상대는 너가 너무 자신을 믿지 않는 순간을 노린다.
당당하게, 너가 가진 전문성과 실력을 두려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최선을 다하면 아무리 미련하고 못된 사람이라도 알아. 그리고 그들도 알아, 시간이 답이라는 걸.
최선을 다한 너는 실패하더라도 너 자신한테 하나도 부끄럽지 않을 거야. 최선을 다한 실패는 좋은 거름이 되어서 언젠가 날아오를 너의 비행에 강력한 파워가 될 거야. 최선을 다한 즐거움은, 실패해서 아프더라도, 인생을 꽉 채우는 즐거움이 될 수 있어.
머스크만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나도 가지고 있고, 너도 가지고 있고, 우리 모두 가지고 있어. 문제는 우리가 가진 그 생각이야. 나는 이걸 '끝나지 않은 생각'이라고 부른다.
머스크만 그런 게 아니야. 이런 사람 어디에나 있어. 너의 상사일 수도, 너의 클라이언트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우리도, 지혜롭게, 나답게.
너를 믿어. 너는 우주야.
지금 세상은 화성이다, 우주다 하면서 저 멀리를 향해 급하게 달려가. 근데 그 어느 것보다, 너는 우주야. 왜냐하면 너는 네 생각을 보고, 고치고, 너 자신을 스스로 항상 발전시키고, 너를 사랑하고, 다른 이를 사랑할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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